용산철거민살인진압규탄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우리가 사회의 틀에 순응하는 한 삶은 전장(戰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그리고 어떤 종교적인 사람도 그런 사회를 수락할 수 없을 것이다―우리는 비로소 사회의 심리적 구조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될 것이다.

 우리는 내적으로 가난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아무런 요구나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무것도. 이 내적 가난만이 삶의 진실을 볼 수 있으며 거기엔 아무 갈등도 없다. 그러한 삶은 어떤 교회에서도, 어떤 사원에서도 발견될 수 없는 축복이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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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운돌 | 2021/12/03 13:53 | 트랙백 | 덧글(0)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하거나 안 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발견하기 위해 당신의 온 마음을 바쳐 주의를 기울여라.

비난이나 정당화가 들어 있는 눈으로는 분노도 폭력도 볼 수 없으며 또 폭력이 당신에게 화급한 문제가 아니라면 당신은 비난과 정당화 그 두 가지를 제거할 수도 없다

 즉 비난과 정당화가 당신이 속한 사회구조의 일부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독일인 · 인도인 · 니그로 · 미국인이라는 제약과 그 제약으로 인해 무뎌진 마음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진리고 무엇이 사랑인지를 알고자 하는 강한 충동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런 개념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오직 현재 있는 것 속에서 살 따름이다.

어떤 판단도 내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당신이 분노의 반대를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분노를 비난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당신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순간 속에 산다는 것은 아무 비난이나 합리화 없이 사는 것이다. 있는 것 속에, 실재하는 것 속에 산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분노를 완전히 이해하는 나머지 그것을 끝낼 수 있다. 당신이 명징하게 들여다볼 때 문제는 풀리게 된다.

해본다는 것은 없으며, 최선을 다한다는 것도 없다.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다

전세계와 자신 안의 폭력 때문에 집이 불타고 있는데 당신은 이렇게 말했다.

  “어디 한 번 생각해 보자. 어떤 이데올로기가 저 불을 끄는데 가장 좋을까?”

  집이 불타고 있을 때, 당신은 물을 나르는 사람의 머리카락 색깔에 관해 말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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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운돌 | 2021/12/03 07:06 | 트랙백 | 덧글(0)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누구에게도 “폭력적이지 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는 한. 그러니 이 폭력 문제를 정말 이해하고 싶다면 우리의 탐구 여행을 계속해 보자

 폭력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나라, 어떤 종교, 어떤 정당이나 편파적 조직에도 속해 있지 않다. 그는 인류에 대한 전적인 이해에 관심이 있다.

가족, 나라, 기(旗)라고 불리는 넝마 한 조각, 신념, 이념, 교조(敎條) 등 당신이 요구하거나 붙잡고 있는 어떤 것을 방어하는 순간, 그 방어는 바로 분노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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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운돌 | 2021/12/02 07:28 | 트랙백 | 덧글(0)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아무런 결론 없이, 당신이 공포에 관해 축적해 온 지식의 간섭 없이 공포를 볼 수 있는가? 만일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과거이지 공포가 아니다. 만일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은 처음으로 과거의 간섭 없이 공포를 보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문제와 불안으로 속으로 혼잣말을 하거나 지껄이지 않아야 다른 사람 말을 들을 수 있듯이, 마음이 아주 고요할 때에만 볼 수 있다.

중심 문제, 즉 공포와 더불어 사는 것을 배우는 문제와 만나지 못할 것이다.
아무 결론을 갖고 있지 않음으로써 공포의 모든 움직임을 좇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공포와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의 일부임을 알 때―즉 당신이 공포임을 알 때―당신은 공포에 관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공포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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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운돌 | 2021/12/01 07:35 | 트랙백 | 덧글(0)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기쁨에 관해 생각할 수 없다. 기쁨은 즉각적인 것인데, 당신이 그것을 생각함으로써 쾌락이 된다. 현재에 산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즉각적으로 지각하는 것이며, 그것에서 쾌락을 찾지 않는다면 커다란 기쁨이 된다

 우리가 정말 찾고 있는 것은 불만족이 전혀 없는 만족인 것이다.

생각이―생각이란 언제나 낡은 것인데, 그 이유는 생각은 기억의 반응이고 기억은 언제나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 속에서 실제가 아닌 사실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 사실은 당신이 건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으로 마음에 남아 있는 체험이 “조심해, 다시는 병에 걸리지 않도록.” 이라는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이미 말했듯이 새로운 생각이란 없다. 새롭다는 걸 알면, 그건 이미 옛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낡은 것의 되풀이일 뿐이다. 즉 미래 속으로 투사했던 생각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각은 공포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래서 당신은 스스로 그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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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운돌 | 2021/11/30 17:16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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