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철거민살인진압규탄

[독재타도] 작은 참여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살립니다.

다음 아고라
퇴근길 지하철에서 우연히 제자를 만나 함께 타게 되었다. 학생이 요새 겪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서울 시내 어느 지하철역 안에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자기 앞에서 걷고 있던 노인이 쓰러졌다고 한다. 그분은 의식을 잃었고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와 바닥을 흥건히 적실 정도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누구 하나 돕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어떤 남학생이 침착하게 그 노인을 살펴보고 전화를 걸어 구급요원을 부른 거예요. 너무 고맙더라고요.” 어느 학생이 나서서 다행이었지만 군중들 속에서 딱 한 사람만이 필요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이 사례는 사회심리학에서 ‘방관자 효과’라고 이르는 것을 판박이처럼 닮았다. 관찰자가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을 외면하고 부인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방관자로 행동하는가 하는 질문은 우문에 가깝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기 쉽다. 방관자가 오히려 정상인 셈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따라서 연구자는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왜 몇몇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가? 이렇게 질문하는 옛 사례로 2차 대전 때 유럽 나치 점령지에서 목숨을 걸고 수배자들을 도왔던 사람들을 들 수 있다.

에바 포겔만이라는 학자가 나치 시대에 자기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을 도왔던 사람들을 심층 조사하여 <양심과 용기>라는 책을 냈다. 그런데 뜻밖에 결과가 나왔다. 그 사람들은 영웅답지 않았고, 자기 스스로 대단히 희생하는 행동을 한다는 의식도 없었다. “그 상황에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고 했고 “누구든 그 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이 행동했다”고도 했다. 그런 사람은 곤경에 빠진 타인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상식으로 인간 품위에 맞게 행동하고 그런 때에는 타인을 돕는 일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생각하며, 당연히 그래야 하므로 그렇게 처신하고, 자기가 든 공동체와 가족 안에서 배우고 실천했던 일상스러운 도덕을 타인에게도 계속 하는 특징을 보였다. 더구나 이들은 어떤 바탕이 되는 도덕이나 정치 의제에 매달리기보다 자기가 어떤 인간인가 하는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것을 포겔만은 ‘올바름은 평범하다’고 일컬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새길 수 있다. 우선, 이 험한 세상에서 꼭 필요한 일이 의외로 상식 수준에 따른 행동으로써 얻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방관과 무관심은 중립이 아니라 나서는 해악이다. 반대로, 작은 관심과 생각이 세상을 크게 바꿀 수 있다. 셋째,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첫걸음이라 할만한 인간애가 중요하다. 넷째, 사상이니 제도니 이념이니 하는 것 이전에 어려워 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일단 돕고 보는 사람을 기르는 일이 우리 공동체를 위해 꼭 필요한 교육 목표일 수 있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요즘 깊이 생각하는 많은 이들이 용산 참사와 민주노총 사건을 이 시대가 심각하게 병든 낌새로 받아들이고 있다. 용산 참사는 엄청난 사건임에도 대중들이 다른 사건보다 별스럽지 않게 보는 자세, 그리고 그것을 부채질하는 권력과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언론에 화가 난다. 민주노총은 큰 구호 속에 파묻혀 사람을 생각하지 않으며 관련자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 앞에서 구경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에 실망했다. 두 사건은 우리 사회 단추를 어디서부터 다시 끼워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by 누운돌 | 2009/09/08 19:59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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