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철거민살인진압규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육영수와 문세광-

2005년 3월 20일 (일) / 제 87 회 다시보기  디피

▣ <육영수와 문세광>
제 1 부 : 중앙정보부는 문세광을 알았다.
  제 2 부 : 문세광을 이용하라

문세광이 쏜 마지막 탄환은 육영수 여사를 맞혔는가?
- 총성, 화면분석 전격 공개!
'배후 인물' 김호룡, 30년만에 만나 단독 인터뷰
-“나는 배후가 아니다”
경찰 책임자와 청와대 경호관 증언 -“장관을 만나러 온 사람”?
문세광 가족과 친구들 증언-“오사카 요주의 인물 1호 문세광”
사건 당일 중앙정보부는 문세광을 알고 있었다
- 당일 중정 기록 공개!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제 29회 광복절 경축 기념행사가 시작됐다. 곧이어 울린 7발 총성과 함께 육영수 여사가 숨을 거뒀다. 범인은 23살 먹은 재일동포 문세광. 배후는 북 사주를 받은 조총련 정치부장 김호룡. 문세광은 대법원 사형선고 3일 만인 12월 20일, 형장에서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고 32년. 2005년 1월 20일 사건관련 한일 외교문서 공개. 2월 24일 사건 수사기록 공개, 3월 15일 문세광 공소장 공개. 관련 문서 잇따른 공개는 사건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가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진실을 추적, 20일과 27일 2회에 걸쳐 방영한다.

문세광에겐 육영수를 쏠 탄환이 남지 않았다?
공개된 수사기록에 나온 저격현장 총성 분석도에는 현장에서 난 총성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총성은 모두 7발.
첫 번째는 오발, 두 번째는 연단, 세 번째는 불발, 네 번째는 육영수 여사, 다섯 번 째는 태극기, 여섯 번째는 장봉화 양, 일곱 번 째는 천정. 취재팀은 사건 당시 TV 녹화 화면을 자세히 분석한 결과 문세광이 쏜 다섯 번째 발사 직전까지 육영수 여사가 총에 맞지 않확인 수 있었다. 네 번째 탄환이 육영수 여사를 맞혔다는 수사기록은 오류다. 수사기록대로 다섯 번째 탄환이 태극기를 맞혔다면, 이미 문세광이 가지고 있던 5연발 리볼버에는 육영수 여사를 쏠 탄환이 남아있지 않은 이다.
육영수 여사 이마를 관통한 탄환이 어떤 종류는 수사기록에서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30년 만에 입을 연 배후 인물 “김호룡”
수사기록에 따르면 사건 수사본부가 문세광 배후로 지적한 김호룡 행적은 다음과 같다.
'73년 11월 박정희 대통령 암살 지시…74년 7월 25일 범행자금 80만 엔 전달…74년 9월 5일 법무부 김호룡 구속영장 발부…한국 수사본부, 일본에 김호룡 신병인도 요청' ‘배후 인물’ 조총련 정치부장 김호룡이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단독 인터뷰에서 30년 만에 입을 열었다.
"내가 문세광에게 주었다는 돈은 그의문세광 엄마가 준 돈으로 일본수사에서 밝혀졌어요."
"수사 받으러 오라고 했으면 갔지요. 조총련이나 나나 출두하라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 경찰은 말한다. “조총련과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가 없다.”

“장관을 만나러 온 사람입니다”
경찰 측 책임자가 로비에서 비표 없는 문세광을 검문하려 하자, 청와대 경호관이 말했다.
"장관을 만나러 온 사람입니다."
사건 당일, 국립극장에는 식장 안 병력 250명을 포함해 총 5백 48명 경찰이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었다.
행사 전날 갑자기 변경된 경호계획에 따라, 문세광이 탄 차는 비표 없이 정문을 통과했다. 그러나 로비 경비를 뚫고 비표 없이 행사장에 입장한다는 은 경호 관계자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청와대 경호실이 문세광을 비호했다?

오사카 요주의 인물 1호 “문세광”
문세광 친구였던 당시 한청(한국청년동맹) 활동가는 문세광에 대해이를, “문세광은 당시 오사카 총영사관에서 1등급 요주의 인물이었어요. 영사관 누구나 알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문세광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과격파 활동가였다. 대부분 시위에 앞장섰으며, ‘늑대처럼 독선’이었던 그를문세광이를, 한청 친구들은 ‘승냥이’라고 불렀다. 그는문세광이는 사건이 일어나기 6개월 전인, 74년 2월까지 김대중 구출위원회 오사카 지부에서 반박정희 활동을 벌였다.

8. 15 사건 당일, 중앙정보부는 문세광을 알고 있었다
8월 15일자 결재 직인이 찍힌 중앙정보부 수사기록에 따르면, 중앙정보부는 사건 당일 이미 문세광의 과거 행적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문세광…고교 재학시부터 ‘김일성 전집’ ‘모택동 어록’을 읽었으며…1973년 9월 김대중 구출위 오사카지부 사무처장…1973년 10월 한청위원장 김군부에게 편지…1972년 7월 김호룡과 만나…1974년 7월 18일 파출소 권총 탈취…만경봉호 승선…1974년 7월 20일 요시이 유키오 호적등본 입수구해 여권위조…”

이상한 점은 또 있다. 조선호텔 관계자 증언에 따르면, 중앙정보부 요원이 15일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적어도 오전 11시 이전에 조선호텔에서 문세광 물건을 압수해갔다고 한다. 그러나 수사본부가 발표한 문세광 최초 자백일은 16일 밤. 결국, 중앙정보부는 문세광이 자백하기 전인 사건 당일부터 이미 문세광과 그의문세광이 세운 계획을 알고 있었던 은 아닐까?

27일 방영될 2부에서는 문세광 일본 알리바이를 추적하고 오사카 중앙정보부 활약상 및 문세광 배후, 그리고 이 사건을 둘러싼 한일 양국 간 거래 을 추적한다.

끝나지 않은 비밀 프로젝트, 일본의 원폭개발

by 누운돌 | 2011/03/26 12:18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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