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철거민살인진압규탄

나는 누구인가?

이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지 찾아보면 아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경험하는 주체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눈이 눈을 볼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어떤 것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만질 수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습니다. <나는 없다 360쪽>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질문을 하면 마음이 알아 낼 수 있는 것을 넘어서 갈 수 있습니다.
온 가슴으로 질문했지만 답을 발견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냥 거기에, 알지 못함에 머물게 됩니다.<361쪽>

내면에 초점을 두면서 지내는 한 가지 방법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되풀이 하는 것입니다.
무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도무지 알지 못할 때도 그 질문과 더불어 사십시오.
그냥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은 누구 또는 무엇인가?"라고 묻기만 하십시오.<362쪽>


고통은 우리가 의도 하는 것과 있는 그대로 현실 사이 거리, 그 간격입니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과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 사이 간격이 얼마나 크냐에 따라
우리가 당하게 될 고통 크기가 결정됩니다. 간격이 없으면 고통도 없습니다.<398쪽>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은 우리 주의가 희망, 꿈, 욕망, 두려움, 의심, 걱정, 이상, 환상 같은 실재하지 않는 것들에 얼마나 집중되고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욕망하는 것은 현존하지 않습니다. 현존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욕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존재'의 생생한 살아 있음은 실재하는 것, 거기에서만 체험할 수 있습니다.<399쪽>

첫번째 가르침은 자신의 경험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지금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제로 알아차려보십시오. 이어서 그것이 바른 경험임을 알아차려보십시오. 알아차리는 것이 무엇이든, 발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바른 경험입니다. 그것을 고치거나 개선해야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금 무슨 경험을 하고 있든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상태가 되기 위해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신의 경험을 알아차리십시오. 의식을, 주의를, 호기심을 지금 하고 있는 경험에 쏟으십시오.<405쪽>

두번째 가르침은 그 경험을 있는 그대로 그냥 허용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경험을 바꾸려는, 더 낫거나 다르거나 더 많거나 더 적게 만들려는 끝없는 노력을 멈추십시오. 그저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십시오.
이 두 가지를 행하는 한 고통은 사라집니다.

올바른 경험을 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경험을 찾거나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핵심은 생각을 그만두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그것이 어떠한지를 알아차리기만 하십시오.
우리는 뭔가를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지금부터 10초 동안 어떤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해보십시오. 해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알아차림은 그냥 일어납니다. 알아차리기와 허용하기라는 이 간단명료한 두 가지 가르침은 우리 존재 특성일 뿐 우리가 해야 할 무엇이 아닙니다. 알아차림은 항상 일어납니다.<407쪽>

경험을 허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우리에게는 "있는 그대로"와 싸우는 것마저도(저항) 허용하고 있습니다.<408쪽>

by 누운돌 | 2013/05/17 06:07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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