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철거민살인진압규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크하르트 톨레>

생각과 생각 사이 빈 공간이 이미 자기 삶 속에서 드문드문 일어나는데도 그대는 알지도 못할 것이다.
스스로를 알아차리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자신을 한 물체로, 생각 형태로 보고 있어서
그대가 알아차리는 대상은 그 생각이지 그대 자신이 아니다.

안에 있는(내) 공간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공간을 찾지만 물건과 경험을 찾듯이 찾기에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어.
영 자각과 깨달음을 추구하는 모든 이들 상황이 이러함(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함, 딜레마)

예수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징표를 따라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보라, 하느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삶 속에서 아름다움, 친절, 단순함에 든 미덕을 발견할 때면 자기 내면에 그 경험 배경인 무엇이 있는지 지켜보라.
무엇을 찾고 있는 것처럼 찾아서는 안되며, "아, 여기 있다."고 말할 수 있지도 않고 머리로 알아내 정의내릴 수 있지도 않다.
마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같아. 무형상, 공간, 고요, '순수한 있음' 언어는 화살표와 같아. 표지판에 불과.

자기 안에서 직접 느낄 때 더욱 깊어짐.
소리, 풍경, 감촉 같은 단순함 가치를 알아볼 때, 아름다움을 볼 때,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친절을 느낄 때,
이 경험 원천이며 배경인 넓은 안에 있는(내) 공간을 감지해 보라. <297쪽>
또 자기 의식을 의식하는 일 "나는 있다."

행복해지는 데는 얼마나 작은 것으로도 충분한가!
더할 나위 없이 작은 것, 가장 미미한 것, 가장 가벼운 것, 도마뱀이 내는 바스락거림, 한 줄기 바람, 찰나 느낌, 순간 눈빛... 이 작은 것들이 최고 행복에 이르게 해 준다. 고요하라.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어머니가 그러셨어 중요한 문제를 풀 때는(고민할 때)
자신이 돌맹이나 나무가 되었다고 상상하라고."

by 누운돌 | 2014/01/18 11:03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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