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4월 12일
UG 크리슈나므르티 - 오직 모를 뿐
깨달음은 없다 1 (있음, 존재, 지금 여기, 알아차림, 존재에 만족, 살아 있다)
이 상태는 비지식非知識저는 벽에 걸린 시계를 삼십 분 정도 바라보고 있어도 몇 시인지 모릅니다. 그것이 시계라는 것도 모르죠.
내면에는 놀라움뿐입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저의 존재가
이 상태는 경탄
제가 배운 모든 지식은 필요하지 않으면 배후에 남아 있습니다. '풀린 상태'이죠.
누군가 저에게 시간을 물으면 지식은 쏜살같이 되돌아옵니다.
그래서 대답을 하죠. 그리고 저는 다시 비지식의 상태,(몰라) 경탄의 상태로 되돌아갑니다.
깨달음은 없다 2
저의 감각기관은 지금 제 앞에 있는 것들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지 않은 것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감각행위와 완전히 조율되어 있다면 내일은 무엇을 먹느냐 하는 불안은 없을 것입니다.
27. 너희 중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할 수 있겠느냐?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33. 오직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너희에게 더해 주실 것이다.(마. 6:25-34)
이 상태는 전지(全知)
그런 질문이 멈춘 상태입니다. 그런 질문은 유기체가 기능하는 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그런 질문이 들지 않습니다. 유기체
깨달음은 없다 3
'나'라고 부르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나'입니다. 그것이 눈을 속이는 분열을 했고, 주체와 객체로 나뉘었습니다.
그 분열
자기 존재
여러분이 자신을 이해하고 싶어하거나, 영
생각
그런 노력을 멈춘 그곳이 바로 제가 묘사하고 있는 곳이죠.
이해하려고 애쓰고, 자신을 변화
생각이 일어날 때 '나'라는 것이(에고) 생겨납니다. 생각이 사라질 때 '나'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을 없앨 수가 없습니다. '나'라는 것이 계속 존재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생각입니다.
사고는 다른 모든 것을 희생시켜서 '나'를 지킵니다. 생각에서 나온 모든 것은 파괴
에고(자기, 자아)는 비난, 비판에 자동으로 에고 복구 장치가 작동. '나'라는 마음속 형상을 복구.
자기 정당화, 방어, 맞비난에 나섬. 손상된 자아의식 복구.(운전 중에 욕배틀)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자기 정당화, 방어, 맞비난에 나섬. 손상된 자아의식 복구.(운전 중에 욕배틀)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여러분이 일생동안 단 일초라도 깨어 있었다면 '나'라는 연속성은 깨졌을 겁니다. 경험구조
'나'는 무너지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합류했을 겁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깨어 있음입니다.
자기가 보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있다면 '나'라는 것이 남아 있는 것이죠. 그저 자기가 아는 낡은 것을 경험한 것 뿐입니다.
원인이 없습니다. 하려고 마음먹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끌어올 수 없죠.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했더니 이 상태에 들어섰다고 말하는 사람은 의심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의사전달을 못한다면 어느 정도는 확실합니다. 맨발로 다니는 최춘선 할아버지
육체에는 대체수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사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만 제외하고는 사고가 끼어들지 못합니다.
권투경기에 비교하자면 여러분은 수건을 던져야 합니다. 완전히 무력하게 되세요.
아무도 여러분을 돕지 못하고, 자기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대들은 모두 미쳤다
몸은 더할 나위없이 지성
자살해도 소용없다! 자살 후에 몸이 해체되는 것은 다른 형태를 갖고 이 삶으로 돌아오기 위해서이다. 결국 끝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삶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시체는 배고픈 개미들을 먹여살리고 좋은 거름이 된다. 다른 생명체를 위한 영양분이 되는 것이다. 그대는 삶을 끝낼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몸은 영원불멸하므로 "과연 불멸성이라는 것이 있습니까?"하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특정한 형태의(인) 몸이 종말을 고하는 것은 다만 다른 형태를 갖고 지속하기 위함이다. 몸은 이것을 안다. 내생에 관한(이라는) 의문은 두려움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다. 그대에게 영적인 삶을 이야기하는 자들, 소위 영적인 지도자하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정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내생에 대한 그대의 기대와 두려움은 곧 그들의 생계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정현채 교수 죽음학 강의 1부 "죽음은 소멸이 아닌 옮겨감이다"
그리고 그대처럼 누군가를 추종하는 무리들은 인간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안내자로 스승이나 사원, 경전에 의존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대는 항상 문제에 대한 치료책으로써 해답을 구하고 있다.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답을 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은 고통스럽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도 소용없다. 본래 그러하다.
공부 - 인간과 세계를 올바르게 인식하도록 하는 일. 공부는 고생 그 자체. 고생하면 세상을 알게 된다.
공부 아닌 것이 없고 공부하지 않는 생명은 없어. 모든 살아있는 생명의 존재형식. 담론 - 신영복 마지막 강의고통을 느끼면 뇌가 활발히 돌아가면서 강해진다.몰입 황농문
내게 있어서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이다.
해탈
그대 스스로 찾아라
다른 말로 한다면, 내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주된 목적은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가치도 없다.
우주에는 절대로 오염되거나 더럽혀지지 않는 순수 의식, 절대
용기를 가져라
무엇이 있건 그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용기이다. 이것이 지성이다.
"나는 지금 그대로
'그것'은 이미 존재한다. 그것은 장차 획득
항상 고통받는(괴로운) 이유는 '있는 그대로'

분별하다 - 서로 다른 일이나 사물을 구별하여 가르다.(내치지 않는 마음)(듣고 지나가기)
정현채 교수 죽음학 강의 1부 "죽음은 소멸이 아닌 옮겨감이다"
정현채 교수 죽음학 강의 2부 "삶의 종말체험과 임종자의 마지막 선물"
정현채 교수 죽음학 강의 5부 " 아름다운 마무리_웰다잉"
# by | 2014/04/12 10:35 | 책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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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이 있건 그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용기이다. 이것이 지성이다. "나는 지금 그대로의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것이 용기이다. UG 크리슈나므르티 ...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