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철거민살인진압규탄

[오아시스레코드] 4인의 힛송 모음집 | 01 바보처럼 살았군요 - 김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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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알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현상, 일) 좋은 일이라고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고, 알 필요가 있다는 믿음을 내려놓으면 혼란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갑자기 그것은 사라져 버린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완전하게 받아들이면
실제로 평화롭고 투명한 상태로 들어가, 생각으로는 결코 달성할 수 없었던,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에 더 가까워진다.
생각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자신을 한계에 가두는 일이다.<130쪽>

고통은 그대를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간다.
고통 원인은 형상과 동일이지만,(몸이 나다) 그 고통이 형상과 동일를 무너뜨린다.(몸은 내가 아니다)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이 에고(자기, 자아)에 있지만, 결국에는 고통이 에고를 부순다.
단, 고통에 의식으로 깨어있을 때만 그 일이 가능하다. <144쪽>(고통을 잊으려고 술, 성에 취하면 안 됨)
고통은 고귀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오직 형상 너머 '존재' 차원에서만 두 사람은 동등하다.
자신 안에서 형상 없는 차원을 발견할 때만 그 관계에 진정한 사랑이 있을 수 있다.
이 '존재'가 그대이며 시간을 초월한 '있음'이다. 그 '존재'가 아이 안에 있는 그 자신을 알아볼 때
아이는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즉 자기 존재를 부모가 알아본다고 느낀다.

사랑한다는 은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자신을 알아보는 이다.
그때 그 다른 사람 '다름'은 순전히 인간인 영역, 형상 영역에만 존재하는 환상임이 밝혀진다.
사랑은 이원(주체, 객체) 세계 속에 있는 일원(형상을 초월한 한 생명)을 알아차리는 일. <152쪽>

에고에 사로잡힌 사람은 고통을 고통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어떤 상황에서 유일하게 합당한 반응으로 여길 이다.
눈 먼 상태인 에고는 자기가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안겨 주는 고통을 볼 능력이 없다.

불만, 초조, 지긋지긋함처럼  낮은 차원 불행이 자기 안에 없는지 관찰해 보라.
그 불행을 정당하거나 설명하는 생각들을 관찰해 보라, 사실은 그 생각이 불행 원인이다.
자기 안에 부정하는 마음 상태가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한
자기 내면 상태와 동일이며 그러한 동일가 에고이다.
거부가 아니라 생각, 감정 , 반응을 알아차림이며, 그 순간에 동일가 자동으로 막을 내린다.

그 전까지 그대는 생각이고 감정이고 자동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알아차림이며 그런 상태를 지켜보는 깨어 있는 의식 '현존'이다.
생각과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일)이 전부이다. 162<쪽>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by 누운돌 | 2020/12/22 21:52 | 노래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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