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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 누리꾼은 마녀사냥 주체인 적이 없었다.

서프라이즈에서
<네티즌은 마녀사냥 주체인 적이 없었다>

마녀사냥 주체는 네티즌이 아니다. 먼저 읽어보시라.

“마녀사냥은 15세기 초부터 산발로 시작되어 16세기 말~17세기가 전성기였다. 당시 유럽 사회는 악마 같은 마법 존재, 곧 마법 집회와 밀교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초기에는 희생자 수도 적었고, 종교재판소가 마녀사냥을 전담하였지만 세속법정이 마녀사냥을 주관하게 되면서 광기에 휩싸이게 되었다.”(네이버 백과사전)

누가 마녀사냥 주체인가? 마녀사냥 주체는 언제나 기득권 주류였을 뿐, 비주류 변방인들이 아니었다. 물론 마녀사냥에 비주류 서민대중이 덩달아 동조해서 나서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동조를 주체 행동이라고 보는 것은 과장이자 왜곡일 뿐이다. 왜냐면 독단 세력 행사 의사도 능력도 없이 다만 동조한 사람들을 가리켜 세력 행사 주체라 부를 수는 없기에 그러하다. 더욱이 지금 네티즌을 마녀사냥꾼이라고 부르는 일에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테제 [ [독일어]These ]
[명사]
1. <정치>정치, 사회 운동 기본 방침이 되는 강령. ≒운동 방침.
2. <철학>=정립2(定立).

1) 네티즌은 마녀사냥 주체가 된 적이 없다. 왜냐하면 네티즌은 주류 의견(테제)에 맞서는 안티테제 행위자로 나설 수는 있었으나 스스로 테제 행위자가 된 적이 없어서 그렇다. ‘네티즌으로 주체가 되자’는 말은 안티테제 능동 행위자가 되자는 말이지, 주류 테제 옹호자가 되자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테제라는 말이 이미 주류 공개 의견이라는 점을 전제하는 말이고, 공개 마당에서 주체는 언제나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기득권 주류일 뿐인 까닭이다. 공개 마당 주체는 홍보 알바 활동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인터넷에 등장할 이유가 없다. 등장하지 않아도 자기들 기득권은 유지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2) 전체 구도를 보자. 역사에서 전체 구도는 언제나 경쟁하는 두 팀과 관객으로 이루어져 있다. 왕과 신하, 노예이든, 왕과 귀족과 농노이든, 자본가와 노동자, 도시 상공시민이든 그러했다. 노예가 상황을 지켜보는 관객인 적도 있고, 농노가 정세를 지켜보는 관객인 적도 있고, 시민이 역사를 지켜보는 관객인 적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마르크스도 치밀하지 못했다는 평이 가능하다. 역사에 언제나 제3 관객이 있었음을 그가 간과했다는 말이다. 아마도 유신론자들은 그 제3 관객을 신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라면, 그 말에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과 같다’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3) 제3 관객을 인정하면 구도 사례들은 이런 것이다.
홍석현과 언론(동성애 찬반), 그리고 관객(당신 자신!)이 있었다.
오현정과 언론(선정적 보도), 그리고 관객이 있었다.
임권택과 언론(천년학 영화평론가), 그리고 관객이 있었다.
최근 일도 말해보자.
황우석과 언론(정운찬과 피디), 그리고 관객이 있었다.
노무현과 언론(헌법재판소와 딴당), 그리고 관객이 있었다.
심형래와 언론(충무로와 평론가), 그리고 관객이 있었다.
더욱 최근 흥미로운 구도는 어떤 것인가.
유시민과 언론(딴당과 수구 찌라시), 그리고 관객일 것이다.

이런 구도 속에서 네티즌은 무엇을 하는가?
마녀사냥을 하는가? 그것이 아닌 이유는 이미 앞에서 말했다.
네티즌 관객은 그들 간 공방, 곧 유별난 개인과 기득권 주류 공방을 지켜보다가 저마다 관전평 한마디를 던질 뿐이다. 물론 그 평들이 모여 함성을 이루기도 한다. 관전평에는 점잖은 글도 있고 욕설 섞인 글도 있다. 욕설 섞인 글이라도 기득권 밖 사람들이 목청 높이는 방법이 욕설이라고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물론 이해하기 싫은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은, 나름 방식으로 응대하면 될 것이다. 똑같은 욕설로 응대해주거나 점잖게 “‘반사’하마”라는 댓글로 응답하든가 말이다.

4) 마녀사냥은 유별난 신앙을 가진 개인을 주류 종교인들이 몰매하는 사건을 말한다. 이런 마녀사냥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맞선 것은 권력 없는 서민이었다. 이성과 양심에 바탕을 둔 서민 반감이 마녀 사냥을 견제하고 극복한 것이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올바른 신앙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교회와 교황 권위를 인정이 아니라, 개인 이성과 양심을 신뢰였다.

5) 네티즌은 마녀사냥 주체가 아니다. 이 네티즌들이 마녀사냥에 동조한 적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예컨대 지하철 개똥녀 비난에 상당수 네티즌이 동조한 바가 있다. 돌아보면 잘못된 언론 마녀사냥에 잘못된 네티즌  동조였다. 하지만 정리해보자. 그 구도 속에는 개똥녀와 언론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개똥녀와 네티즌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똥녀 대 <언론 더하기 네티즌>이 때 논쟁 구도였던 것이다. 언론 오도에 네티즌이 동조한 경우가 그 사건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경우에도 네티즌이 마녀 사냥 주체는 아니었다. 사건 원인을 제공하고, 과정을 부채질하며, 비극스런 결말을 유도한 후에, 네티즌이 마녀사냥을 했다고 평가했던 언론들이 바로 마녀 사냥 주체였던 것이다. 언론 탓하고 넘어가자는 말이 아니다.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같은 실수는 아니지만 비슷한 실수가 지금에도 물론 존재한다. 예컨대 대중이 노무현만을 탓하는 세태가 지금 모습니다. 그런데 어느 언론도 그것을 노무현 마녀사냥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왠가? 언론이 스스로 마녀 사냥 주체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계획한 사냥에 동조한 대중들에게는 마녀사냥 한다고 탓하지 않는다. 언론에 동조하는 사람들에는 그런 딱지를 붙일 필요가 그들에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론이 언어를 일관되게 사용하려 한다면, 대중이 일방으로 노무현 폄하하는 일를 마녀사냥이라고 비판하여야 옳다. 물론 우리는 노무현 마녀사냥이 잘못된 것이고, 대중들은 마녀사냥 주체가 아니라 언론에 오도되어 동조하는 것뿐임을 알고 있다. 노무현 마녀사냥 주체는 언론임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6) 마녀사냥은 언론이 해온 것이다. 그러므로 언론에 맞서는 사람들을, 또는 지배하는 주류 의견에 맞서는 대중들을 마녀 사냥꾼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단견이다. 그들은 단지 소리치는 관객일 뿐이다. 관객 소리는 불공정하게 진행되는 경기에 맞선 당연한 관객 함성, 분노하는 함성인 것이다. 관객 소리를 대중심리에 따른 함성이나 마녀사냥 함성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독단이다. 관객 소리는 오히려 제3자인 심판하는 소리인 것이다.

7) 정리해 보자. 언론은 세상사에 소리 내어 판단할 권리가 있다. 평론가도 세상사 현상에 판단할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관객도 심판할 권리가 있다.
남북정상회담합의를 판단하는 언론이든,
디워 플롯과 CG를 판단하는 평론가이든,
대법원 행정수도 위헌 심판이든,
선관위 대통령 선거법 위반 판단이든 간에,
그 모든 것을 네티즌은 관객으로서 지켜보고 그 공정성을 판단할 권리가 있다.
세상사 전개과정은 찬반 구도 속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제3 눈을 지닌 관객도 그 구도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객 심판이 신 눈인 것이다.
관객 심판을 우리는 선조 말씀을 따라,
‘민심은 천심이다’라고 하지, ‘민심이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by 누운돌 | 2007/08/12 11:16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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