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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비극과 ‘피부색 장벽’

얼마 전 아이티 어린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진흙으로 만든 과자를 먹는다는 충격스런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놀랍게도‘진흙 과자’는 아이티에서 산업이다. 농촌 인구 80% 이상이 빈곤선 아래에 있어 빵 하나 살 돈이면 그것으로 한 가족이충분히 허기를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티는 아프리카 빈국들과 비교해도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다.

‘노예혁명’ 이룬 위대한 역사
그런데 다들 잘 모르지만, 아이티는 참으로 위대한 과거가 있다. 18세기에 아이티는 생도맹그라는 이름으로 번영하는 프랑스식민지였다. 몇몇 백인이 대농장을 만들어 50만명이 넘는 흑인들을 노예로 부려 설탕, 커피를 생산하여 막대한 부를 남겼다.이 노예들이 1791년에 반란을 일으켜 투생 루베르튀르라는 걸출한 흑인 지도자를 배출하면서 결국 나폴레옹 군대까지 물리치고1804년에 독립을 쟁취해냈다. 돌이켜보면, ‘아이티혁명’은 혁명 중에서도 혁명이라는 프랑스혁명과 비교해서 조금도 뒤지지 않는 대혁명이다. 아이티혁명은 흑인이 이끄는 첫 식민지해방투쟁이며, 아이티는 지금까지도 성공한 노예혁명으로 나라를 세운 유일한 예다.

중요한 것은 이 위대한 역사와 오늘 이 비참한 현실이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피부)색 장벽’이다.프랑스인들이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말하는, 노예제까지 폐지했던 프랑스혁명에 있는 보편이라는 것은 기실 혁명가가 아니라 노예들이 만든 작품이며, 로베스피에르와 같은 진보 민주인사조차도 노예제 폐지에 무관심했다. 구미 백인들 누구도 인종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구미 백인들은 아이티 독립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떻게 흑인이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가! 노예혁명과 아이티 탄생은 그 때 유럽인이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아이티를 철저히 망가뜨려야 했다.

아이티는 독립했지만, 미국을 포함한 유럽 열강은 일부러 아이티를 배제하고 무시했다. 어느 나라도 아이티를 승인하지 않았다.아이티는 국제질서에서 완전한 고아였다. 아이티는 1838년에 프랑스에게 공식 승인을 받으려고 엄청난 배상금을 써야했고, 이를 위해 엄청난 돈을 프랑스한테 빌려야 했다. 그러고서 유럽 열강들도 국제 승인을 했지만, 미국은 남북전쟁이 벌어지던 1862년이 되어서야 승인했다.

서구 집단 따돌림에 최빈국 전락

구미 열강은 아이티가 국제에서  고립된 점과 오랜 혁명 과정으로 생긴 경제 피폐를 한껏 이용했다. 19세기 후반기에 오면 유럽 자본이 아이티 경제를 장악했고, 심지어 중앙은행조차도 프랑스 자본으로 세웠다. 1880년대부터는 미국 자본이 실제 아이티 주인이되었다. 미국은 아예 1915~34년에는 무력으로 아이티를 점령했다. 이후 아이티는 30년에 걸쳐 발리에 부자 독재체제, 뒤이은 여러 군정에 시달렸다. 미국은 94년에 제2차 점령을 감행했고, 유엔은 헌장 규정을 무시하고 이를 승인했다. 경제는 외국계가 장악하고, 몇몇 지배층은 미국 앞잡이에 불과하다. 아이티는 미국 식민지나 다를 바 없다.

아이티 민중이 투쟁한 역사는 눈물겹지만 위대하다. 그들은 미국 점령군에 맞서 게릴라전을 벌여 점령을 끝냈다. 이런 혁명전통이 있어 아리스티드라는 지도자도 나올 수 있었다. 오늘 아이티는 제2 혁명이 필요하다. 혁명 전통은 제2 혁명를 이루는데 중요한 자산이 되리라 본다.<최갑수 서울대교수·서양사학>
경향신문

by 누운돌 | 2009/03/24 21:45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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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Picketline at 2009/03/25 05:26
당시 유럽의 좌파들이 인종문제 뿐만 아니라 A-A제국의 식민지 문제에 무관심했었죠. 시대적인 한계로 보면 될 것이며, 지금도 그런 좌파가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좌파 취급은커녕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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