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철거민살인진압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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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서로에게 변호인이 되어주면 어떨까요? -유시민

서로에게 변호인이 되어주면 어떨까요?

시민광장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시냐고, 그렇게 안부를 묻는 것이 왠지 민망해지는 세상입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주고받는, 어찌 보면 다정하고 달리 보면 판에 박힌 인사말씀을 드리는 것이 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시사평론가 삘’이 나는 새해인사들 드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동안 더는 시사평론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오늘만큼은 예외로 하겠습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철도노조 파업이 고비를 맞은 것 같습니다. 조합원들이 파업 지속 여부에 대해 뜻을 모으는 절차, 파업 합법 여부와 체포영장 처리 문제를 둘러싼 대립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파업 자체는 ‘일단 멈춤’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든, 이번 철도노조 파업은 몇 가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의제를 남겼습니다.

먼저 공기업 민영화 문제입니다. 도대체 왜 공기업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공기업은 ‘시장 실패에 대한 처방입니다. 자본주의 또는 시장경제체제를 적극 옹호하는 주류경제학자들도 이 체제에 구조인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첫째는 외부효과(external effect)입니다. 외부효과 때문에 사회에는 꼭 필요하지만 공급자가 이윤을 얻기가 어려운 사업 분야가 있습니다. 그러면 공급자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국방, 치안서비스, 도로 같은 것입니다. 이런 것은 국가가 직접 또는 공기업을 만들어 서비스를 공급해야 합니다. 국군, 경찰, 도로공사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둘째는 ‘자연 독점(natural monopoly)’입니다. 어떤 산업은 공급자가 이윤을 얻을 수 있지만 공급자 사이 경쟁이 반드시 민간독점기업 출현으로 귀결됩니다. 전형인 것이 망산업(網産業)입니다. 철도, 상수도, 통신신업 같은 것이지요. 이런 산업에서는 복수 공급자가 나타나기도 어렵지만, 나타난다고 해도 소위 ‘규모 경제(economy of scale)’ 때문에 결국 강자가 약자를 모두 집어삼켜 독점으로 귀착됩니다. 민간독점이 출현하면 최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소비자인 국민을 ‘착취’하게 됩니다. 시장은 기능을 상실합니다. 이것이 ‘최악 사태’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 도입한 ‘차악 선택’이 국가가 운영하는 독점기업입니다. 코레일이 바로 그런 독점공기업이지요. 민간독점기업보다는 독점공기업이 낫다는 이야기입니다. 국가는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 착취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최선’이 아닌 ‘차악 선택’입니다. 시장만 실패하는 게 아니라 국가도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른바 ‘공기업 방만한 경영’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경쟁 압력이 없기 때문에 공기업은 효율을 상실하기 쉽습니다. 공기업은 사실 정리해고가 없습니다. 평생직장입니다. 경영에 문제가 있어서 적자가 나도 국가가 책임을 지기 때문에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국민이 주인이지만 국민이 직접 감시하거나 경영하지 않기 때문에 임직원들이 국민 이익이 아니라 자신 이익을 위해 부정부패를 저지르거나 부당한 특권을 만들기도 합니다. 인간은 원래 자기중심 존재인 만큼, 경쟁 압력외부 감시 통제가 없으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공기업은 늘 스스로 혁신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일정 부분 혁신을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주식회사인 자회사를 만들어 수서발 KTX 노선 운영을 맡기려고 합니다. 만약 이것이 언젠가 이 자회사를 민영화 또는 사유화(privatization)하기 위한 예비 작업이라면 이는 ‘차악’을 버리고 ‘최악’을 선택하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철도파업에 대한 여론 지지가 다른 파업 때보다 높은 것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국민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기업 경영에서 나타나는 국가 실패, 즉 방만한 경영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국민도 역시 많습니다. 철도파업에 대한 반대가 찬성보다 더 많고, 정부 강경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반대가 찬성보다 많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공기업 체제를 유지하면서 코레일을 더 합리 효율으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맞을 것입니다.

만약 정부가 그러한 국민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수서발 KTX 자회사를 만드는 것은 합리 방안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노조와 국민들이 환영하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그것을 고집해야 할 합리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만약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민영화에 대한 우려를 일으키지 않는 다른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코레일 노선 가운데 흑자를 내는 것은 KTX와 경의선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코레일이 다른 적자노선을 유지하는 것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기본권인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코레일이 적자노선을 포기한다면 몇몇 대도시 주민을 제외한 다른 곳에 사는 국민들은 철도를 아예 이용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수서발 KTX만을 떼 내어 만든 자회사는 도대체 누구와 경쟁합니까? 경쟁상대가 없습니다. 수서발 KTX가 운행을 시작하면 코레일은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경부선과 호남선 KTX를 타던 승객을 자회사에 빼앗겨 더 큰 적자를 내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적자노선을 가진 코레일과 흑자노선 하나만 가진 자회사를 경쟁시킨다는 발상 자체를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굳이 내부경쟁을 시키려고 한다면 코레일 내부에 흑자노선과 적자노선을 균형 있게 결합한 복수 사업단위를 형성해, 그 사업단위 경영합리성과 효율을 경영실적과 승객 만족도 등의 지표를 활용해 비교 평가하는 게 더 좋은 방안일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철도민영화 논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철도파업이 남긴 두 번째 생각거리는 이른바 ‘귀족노조’ 문제입니다. 정부가 밝힌 코레일 직원 평균연봉은 6,300만원이라고 합니다. 평생직장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만 가지고 코레일 노동조합을 ‘귀족노조’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정부는 평균연봉 말고는 다른 정보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코레일 직원 평균 근속연수가 19년이 넘는다는 사실 같은 것 말입니다. 남성 노동자 경우 군대를 다녀와서 25세에 코레일에 취직했다면(그때는 국가기관인 철도청이었지요.), 지금 나이가 40대 중반입니다.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겁니다. 자녀가 둘 있는 4인 가족 홑벌이 가장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대한민국 1인당 국민소득은 약 24,000달러입니다. 네 사람이면 10만 달러가 채 못 되지요. 현재 환율을 적용해 환산하면 1억 원이 좀 넘습니다. 국민소득 평균만큼만 가구소득을 올린다면 그렇게 됩니다. 19년을 근속한 코레일 소속 홑벌이 가장 연봉 6,300만원은 그 절반보다 조금 많습니다. 4인가족 평균국민소득 약 절반을 연봉으로 받는데, 그 사람을 ‘귀족노동자’라고 하는 게 타당할까요? 아닐 것입니다. 만약 배우자가 그만큼 더 번다면 그 가족은 국민소득 평균만큼 법니다. 하지만 그래도 ‘귀족’은 절대 아닙니다. 이게 귀족이라면 대한민국 국민 절대다수는 ‘양민’이 아니라 ‘천민’이 될 것입니다.

정부 관계자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귀족노조’라고 하는 것은 안정되고 괜찮은 일자리를 가진 코레일 노동자들을 정치으로 고립시키려는 작전입니다. 다 아시는 것처럼 우리나라에는 코레일 노동자들보다 훨씬 힘들게 사는 노동자가 많습니다. 훨씬 더 적은 급여를 받고, 훨씬 더 나쁜 근로환경에서, 훨씬 더 긴 시간 일하는 중소기업 노동자가 있습니다. 비정규직, 임시직, 일용직 노동자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분들은 안정된 직장을 가진 코레일 노동자가 파업을 하는 데 불만을 느낄 수 있지요. 그러나 이번 파업은 연봉을 올려달라고 한 파업이 아니라 철도 민영화를 막으려고 한 파업입니다. 설사 임금을 올려달라고 파업을 했다고 해도, 더 어렵게 사는 노동자가 많다는 것을 이유로 정부가 이렇게 힘으로 억눌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노동시장 양극화 현상은 극복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임시직 노동자들 소득과 복지를 올려야 합니다. 상대으로 고용이 안정되고 급여가 괜찮은 사람들 연봉을 깎고 그들마저 고용불안으로 밀어 넣는 ‘하향평준화’가 노동시장 양극화 바른 해법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저는 코레일 노조가 ‘귀족노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속 19년차에 4인가족 평균국민소득 절반 정도를 연봉으로 받는 평범한 사람들 노동조합이라 생각합니다.

철도노조 파업이 준 세 번째 생각거리는 ‘연대(solitarity)’ 소중함입니다. 새누리당은 철도 민영화와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강경진압 원조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진보지식인들 중에도 그 두 대통령이 신자유주의자였으며, 새누리당 주장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몰려온 이른바 신자유주의 공공개혁 쓰나미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철도청이라는 공무원 조직이 코레일이라는 공기업으로 바뀐 경위, 2003년 두 차례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노무현 정부 대처방식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당시 뉴스를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번 철도파업을 보면서 누구나 변호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살인죄처럼 중형 선고가 불가피한 피고인에게는 반드시 변호인이 있어야 합니다. 피고인이 돈이 없어서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하면 국가가 국선변호인을 붙여 줍니다. 변호인이 없으면 재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 ‘흉악범’에게 국가가 국민 세금을 들여 국선변호인을 붙여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 전부는 아닐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쓴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살인을 하기는 했지만 정상을 참작해야 할 사연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대해서 변호인이 가능한 모든 합리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잘못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을 최소할 수 있습니다. 흉악범죄 피고인 인권까지 보호할 때라야 만인 인권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선변호인을 붙여주는 것이지요.

변호인은 법정에만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에서도 변호인이 필요합니다. 지난 주말 영하 10도 혹한을 무릅쓰고 직접 만든 작은 손팻말을 들고 두 시간 동안 서울광장에 서 있었던 시민들은 코레일 노동조합 변호인이었습니다. 코레일 노동조합을 지원하는 단체에 성금을 보낸 시민들은 공익 변호인이었습니다. 국철 분당선 기관사가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퍼뜨린 트위터리안들도 공동선 변호인들이었습니다. 진보정부 10년(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을 이렇게 부릅니다.)을 돌이켜볼 때 가장 큰 회한이 남는 것은 제가 남들에게 변호인이 되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누구에게나 변호인이 필요합니다. 심지어 대통령도 그렇습니다. 그때 저는 사방에 노무현 대통령 잘못과 부족함을 꾸짖고 고발하는 검사들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더 진보인 야당과 더 진보인 지식인들이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논객보다 더 날카롭고 무서운 검사로 느껴졌습니다. 어떤 진보 지식인들은 지금도 변함없이 진보정부 10년 두 대통령을 무섭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때 집권당과 정부에 있던 저는 오로지 노무현 대통령을 변호하는 데만 몰두했습니다. 제 자신이 시사평론을 하던 시절 김대중 대통령께 마치 검사처럼 한 적이 있으면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더 진보인 야당과 노동자, 농민, 영세상공인들 변호인이 되려고 힘껏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변호인이 되려고 한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 변호인이 되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사랑하는 시민광장 회원 여러분.

그동안 변호인이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서로에게 변호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변호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먼저 그 사람 변호인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 인사를 듣지 못해도, 때로 오해를 받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우리 내면에서 이런 소리가 들릴 때, 그럴 때는 망설이지 말고 이렇게 소리치면 좋겠습니다.

“하겠습니다. 변호인 내가 할게요!”

더 뜻있는 2014년, 건강하게 힘차게 맞으시기를 기원하며
2013년 12월 30일 유시민

by 누운돌 | 2014/01/02 20:15 |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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