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철거민살인진압규탄

태그 : 알아차림

그대는 누구인가 - 나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

-깨달음이나 참나 실현은 자각, 즉 참존재에 대한 자명한 자각입니까? (형용사+명사)
(존재자명하게 자각하는 일입니까?) (부사 + 동사)
그렇다. 깨달음이란 자각이다. 완전한 자각 혹은 참존재는 같은 이다.
차이가 없다. 완전한 자각. 모든 이 거기에 있다.
그대는 그 자각이다.

-제게는 이 자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스승님 깨달음은 저 깨달음보다 훨씬 더 깊습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대가 차이를 만든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런 차이가 없다.

-제가 스승님 자리에 앉아 있으면, 일주일 뒤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입니다.
한번 해 보라. 이리 오라.(모두 웃음) 나도 이 차이점을 나의 스승께 질문했다.
나의 스승은 차이가 없다고 했고, 나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문제인 같습니다. 저는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이 있습니다.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고?(웃음) 나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대가 받아들이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이다. "나는 자유롭다."를 받아들이면 그대는 자유롭다.
"나는 자유롭지 않다."를 받아들이면 자유롭지 않다. 72쪽


그대는 누구인가 깨달음으로 가는 길 1 슈리 푼자 (지은이)

http://www.youtube.com/user/HongikHd/videos

by 누운돌 | 2018/03/22 11:22 |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완전한 깨달음 - 아디야샨티

완전한 깨달음 - 영원한 자유와 해방을 위한 아디야샨티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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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감정, 소리, 냄새 등의 현상들, 즉 앞에 있는 풍경들보다 고요한 배경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앞에 있는 풍경들에, 오감을 통해 느끼는 것들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참나는 배경에서 발견됩니다. 참나는 모든 현상이 나타나는 근원이자, 가장 미묘한 느낌과 경험들로부터 거친 물질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상이 드러나는 바탕입니다. 가만히 쉬면서 이 배경으로 머물러 있을 때, 당신의 참나를 맛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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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명상에서는 모든 대상이 저마다 자연스럽게 기능하도록 놓아둡니다. 이 말은 어떤 알아차림 대상을 조작하거나 억누르기 위해 노력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참된 명상에서는 알아차림 자체에 중점을 둡니다. 즉 대상들을 알아차리는 데 주안점을 두는 이 아니라, 근원인 알아차림 자체로 머무르는 데 주안점을 두는 입니다. 근원인 알아차림, 의식은 모든 대상이 그 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근원입니다. 편안히 휴식하며 그저 알아차리고 듣기만 할 때, 대상에 대한 마음 강박인 집착은 점차 사라질 입니다. 존재 고요함이 의식 속에 더욱 분명하게 들어오며, 당신은 그 안에서 편히 쉬며 머무르게 될 입니다. 어떤 목표나 기대도 없이 열린 채로 받아들이면, 고요함과 평온함이 쉽게 현존하게 되며, 당신이 본래 고요하고 평온함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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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사람들은 이 상태나 저 상태를 잃을까 봐 노심초사합니다. 그들은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에 휘말립니다. 오고 가는 은 실재하는 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것을 좇는 행위를 그만두십시오. 오고 가는 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잃어버린 적이 없는 은 무엇입니까? 정말로 중요한 은 그것입니다. 무엇이 항상 있습니까? 행복할 때도 불행할 때도 변함없이 있는 은 무엇입니까? 진정한 당신은 언제나 현존하며 언제나 똑같습니다. 오지도 가지도 않는 그것이 실재하는 입니다. 자유는, 다른 어느 곳이 아닌, 오로지 그곳에서만 발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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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순간에는 모든 이 떨어져 나갑니다. 모든 것이. 갑자기 발 딛고 있던 땅이 꺼지고, 당신은 홀로 남습니다. 당신은 혼자입니다. 다른 사람, 다른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분리되어 있는 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당신만이, 오직 참나만이, 오직 한없는 텅 빔만이, 순수 의식만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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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사람들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마음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 감정에게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 삶에게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게 없다면, 남아 있는 전부는 믿어지지 않는 자유로움입니다.


야단법석
법륜 스님의 지구촌 즉문즉설
우리는 ‘안 고칠 바에야 뭣 하러 문제를 제기하느냐’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러면 그것은 사랑이 없는 겁니다. 또 문제를 제기하면 꼭 고칠 이라고 집착하는 도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미움이 일어납니다. 미워하지 않고 사랑으로 하면 꾸준히 할 수 있고, 집착해서 하면 바짝 하다가 안 되면 포기해 버립니다. 성인 말씀은 내가 굉장한 사람이 되라는 이 아니라 자기를 행복하게 하라입니다.

항상 내가 맞출 마음을 가지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고집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자꾸 자기를 봐야 합니다. 그러려면 종교와 관계없이 절을 많이 해야 합니다. 자기가 고집하는 것을 항상 알아차려야 합니다.

먼저 이치으로 본래 옳고 그름이 없는 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만 다를 뿐이지, 옳고 그름이 없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면 화날 일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의식으로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중심에 둡니다.
자신 화난 상태를 직시해야 합니다. 억누르는이 아니라 알아차림을 통해서 고쳐가는 입니다.

by 누운돌 | 2015/10/18 17:00 | | 트랙백 | 덧글(0)

가만히 앉다 -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

신기루를 쫓는 것처럼 우리가 도착할 때 극락은 사라진다. 가만히 앉다 286쪽
지혜란 구할 것이 없다는 것을 보는 것이다.
모든 기대를 저버린다는
(잊거나 어기다) 마음가짐이야말로 순수함이다. 자비로운 실천이다.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
그대로 경험하는 그 자리가 깨달은  상태임을 결코 느끼지 못한다.
289쪽

by 누운돌 | 2015/06/29 06:31 | | 트랙백 | 덧글(0)

자유의 불꽃 - 빠빠지 "나는 의식이야."

"나는 이 몸이야."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자기에게 "나는 의식이야."라고 말하십시오.
삶에서 하는 모든 일을 하려면 의식이 필요하지만, 그대는 의식에 무지합니다. 행위자인 자아에 맡기며, 또 자아가 하기로 결심하는 모든 행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무지입니다.
자신이 스크린 즉, 그 안에 나타나는 모든 그림들에 영향 받지 않는 자각이라는 것을 알 때, 더는 고통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햇빛으로 서로를 알아보지만, 서로를 바라보면서 상호작용하기에 너무 바빠서 햇빛이 있기에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각은 이 모든 현상계 드라마가 일어나는 배경으로서 언제나 있습니다.

"나는행위자다."라는 것은 자신을 바쁘게 하고 몰두하게 하는 관념입니다. 항상 "나는 이것을 하고 있다."라고 생각하거나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다양한 활동들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이 행위자라는 지속되는 생각에 빠져 있는 한,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없습니다.
자유를 원하면 시간과 주의 일부분을 자기 참나에 바칠 필요가 있고, 그것을 제대로 해내려면 "나는 행위자다."라는 관점을 버려야 합니다. 376쪽 자유의 불꽃

"어머니가 그러셨어 중요한 문제를 풀 때는 자신이 돌맹이나 나무가 되었다고 상상하라고." 

by 누운돌 | 2015/01/18 08:33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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