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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뿌리는 친일 -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보입니다

한나라당 근원은 친일 -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보입니다
(82cook / 부산맘 / 2008-7-21)


공전 히트를 기록했던 "여명 눈동자"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여기에 스쯔끼라는 악질 고등계 형사가 나오는데요, 이 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다 고문하고 죽입니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에게 불량선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누명을 씌우기도 합니다. 정말 보면서 주먹이 불끈불끈 쥐어질 정도로 증오스러운 놈입니다. 주인공인 하림 역시 스즈끼에게 가족들을 잃은 희생자 중 한 명이었지요. 스즈끼는 하림 역시 엮어 넣으려고 계속 괴롭힙니다. 그러던 중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하림은 징병에 끌려갔다가 탈출해 미군 특수부대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합니다.

전쟁이 연합군 승리로 끝나고 해방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하림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하림은 어느 날 경찰서에 들렀다가 충격인 광경을 목격합니다. 경찰서에서 여전히 부하들을 호령하고 있는 스즈끼를 발견한 겁니다. 눈이 돌아간 하림은 뛰어가 스즈끼 멱살을 잡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서 소리를 지릅니다.

"스즈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해방이 되었어! 스즈끼!"

멱살을 잡힌 스즈끼는 부하들을 시켜 하림을 끌어내라고 합니다. 하림은 무력하게 경찰들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비명을 지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스즈끼는 침을 뱉듯 말합니다. "저런, 빨갱이 새끼."

"여명 눈동자"에서 이 장면은 정말 충격인 장면이었습니다. 친일파는 해방이 되어도 처벌받지 않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빨갱이로 몰려 두들겨 맞습니다. 해방이 되었지만 세상이 바뀌지 않은 겁니다. 문제는 이게 그냥 드라마 구성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국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라는 겁니다.

미 군정을 뒤에 업은 이승만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친일파를 모두 흡수합니다. 세상이 뒤집히고 처벌이 될까 두려워 덜덜 떨던 조선총독부 관료들, 경찰들은 살기 위해 이승만에게 가서 붙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일어납니다. 친일파들의 살길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이제 '빨갱이'를 입에 달고 삽니다. '빨갱이가 쳐들어온다.', '빨갱이가 우리를 죽이려 한다.', '우리가 빨갱이로부터 너희를 지켜주겠다.' 

그렇게 친일파는 식민지 시대 권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건국 공로자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승만 독재 시대에 승승장구하던 그들은 그러나 다시 한번 위기를 맞습니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들은 두려움에 떱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박정희에 의해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친일파들에게 다시 살길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이제 박정희 공화당에 투신합니다. 따지고 보면 박정희 자신이 일제시대 친일파입니다. 일본 육사 졸업하며 천황한테 혈서 쓰고 자랑스러운 황국신민으로 공인받은 자이니까요. 그리고 박정희 독재가 시작되었습니다.

박정희는 헌법 개정을 통해 자기가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국회? 그까짓 거 필요 없습니다. 해산시켜 버립니다. 밤마다 비서실장 시켜 여대생들 바꿔가며 밤 문화를 즐기다가 1979년 10월 26일, 그날도 여대생 옆에 끼고 술 마시다 총에 맞아 죽습니다.

친일파에게 다시 위기가 왔습니다. 아, 이놈의 위기는 잊을 만하면 옵니다. 그러나 또 구원투수가 등장합니다. 전두환이 12.12. 쿠데타를 일으키며 정권을 장악한 겁니다. 친일파들은 이제 기꺼이 전두환 품에 안깁니다. 1980년 5월 18월 광주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총질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입니다. 그리고 지들끼리 모여 지들끼리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박정희 때 공화당 인사들은 이제 전두환 민정당을 구성합니다.

1987년 6월. 또 위기가 옵니다. 전 국민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겁니다.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통령을 니들끼리 뽑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직접 뽑겠다고 주장합니다. 노태우에게 대통령직을 선물하려던 전두환은 어쩔 수 없이 이에 굴복합니다. 그래서 드디어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역사 선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친일파들은 긴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정말 기적 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해왔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싸우다 후보단일화를 못 해 표를 갈라 먹은 겁니다. 결국, 노태우가 35.9% 득표율로 턱걸이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친일파는 또 살아남았습니다. 아, 미칠 노릇입니다.

그리고 죽어도 대통령 한번 해먹겠다고 결심한 김영삼은 마침내 노태우에게 항복합니다.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이 3당 합당을 하여 민자당을 만듭니다. 유일한 민주화 세력이 된 김대중은 고립됩니다.

그리고 그다음 대선에서 민주화 운동 경력을 팔아넘기고, 양심을 팔아넘기며 친일파, 군사독재 세력과 손을 잡은 김영삼은 마침내 꿈에 그리던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당 이름은 신한국당이라고 바꿉니다. 그리고 나라를 하나하나 말아먹다가 1997년 IMF 사태를 일으킵니다. 나라가 부도가 났습니다. 수많은 회사들이 망해 넘어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소주병을 들고 한강에 뛰어내리고 목을 맸습니다. 신한국당은 슬쩍 한나라당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고작 당 이름을 살짝 바꾼 것만으로 나라를 부도 상태로 몰아넣은 그들은 대선에서 약 40% 득표율을 기록합니다.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티끌만 한 차이로 마침내 김대중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뤄냅니다.

친일파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패닉에 빠진 그들은 그러나 5년만 참자고 다짐합니다. 5년 동안 열심히 김대중을 빨갱이라고 욕합니다. 스즈끼가 하림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듯, 이들이 살아남는 길은 무조건 상대방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는 겁니다. 그러나 5년 뒤 선거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노무현에게 또 패합니다. 미칠 것 같습니다. 다시 5년 동안 빨갱이라고 몰아붙입니다. 경제가 망했다고 외쳐댑니다. 서민 경제가 파탄이라고 외쳐댑니다. 마치 IMF를 김대중이 일으킨 것 같은 착각마저 일어날 지경입니다.

어쨌든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친일파 명부를 만들고 진상을 조사하는 작업이 진행됩니다. 친일파들은 위기감을 느낍니다. 정치 탄압이라고 마구 훼방을 놓습니다. 그 과정에서 뉴라이트가 결성됩니다. 그냥 상대방을 빨갱이로 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그들은 이제 자신들 과거 행적을 감추려 들지 않습니다. 아예 맞불을 놓습니다. 식민지 시대가 좋은 시대였다고 우기기 시작합니다. 친일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죠. 통계 자료를 가져와 식민지시대가 이렇게 경제 발전이 된 시기였다고 주장합니다. 근대화 시대였다고 주장합니다. 자신들을 친일파라고 부르지 말고 근대화 세력이라고 불러 달랍니다. 자신들을 군사독재 세력이라고 부르지 말고 근대화 세력이라고 불러 달랍니다.

그들 논리는 간단합니다. '친일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됐지!', '독재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됐지! '그리고 이명박을 밀어줍니다. '범죄자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돼지', '사기꾼이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돼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이게 먹힙니다. 병무청 이명박씨 군 면제자 기록 숨겨

by 누운돌 | 2010/09/23 16:28 | 트랙백 | 덧글(0)

3.1절, 친일매국세력 기원

다음 아고라
대동법, 국사시간에 배우셨을 겁니다.토지소유자들에게 직접세금을 부과하여 땅을 가지지 못한 백성 세부담을 경감해주려는 17세기 광해군이 시행한 조세개혁정책입니다.전국으로 시행되기 까지 약 100년이 걸렸습니다.

서원, 양반 사대부들이 후학을 양성하고 여러 선현들을 모신다는 명목으로 면세를 받으며 노론세력 근거지 역할을 했습니다.

성리학 유일사상, 사대부 중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반대되는 사상을 탄압한 수구 지배 이데올로기 였습니다.

친명사대주의 소중화사상, 성리학 유일사상과 더불어 모든 진보 개화운동을 탄압하며 결국 한민족을 암울한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종부세, 공시지가 6억이상, 전체가구 2%에게만 부과하는 강력한 부동산 투기근절법입니다. 2008년 11월을 기점으로 완전히 무력화되었습니다.

사학법, 도처에 만연하는 사학재단 비리를 '터럭'만큼이라도 감시하고자는 취지에서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한 법입니다. 수구 돈줄 역할을 충실히 하는 사학을 견제하고자 했으나 지금 다시 개정할 움직임을 보입니다.

국가보안법, 수구세력에게 가장 강력한 체제유지수단으로써, 광복이후 수구기득권세력 밥그릇을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사대주의적 한미동맹, 한미양국이 대등한 '친구' 관계가 아닌 굴욕스럽고 일방인 종속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역시 광복이후 매국친일파 안전보장을 유지시켜준 수단입니다. 낡아빠진 이 패러다임을 유지하기 위해서 21세기 대한민국이 많은 대가를 치루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다른 듯하면서도 뭔가 관계가 있고 목적과 의도가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3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이 역사적 사실로 우리는 수구기득권이 민중탄압방법과 체제유지수단이 전혀 변함이 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말씀드리고자 하는 '대한민국 극우300년' 행적을 보시면 여러분들은 아마 노론벽파에서 한나라당까지 이어온 경이로운 '수구세력' 생존력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노론벽파
송시열을 ' 송자'라 칭하며 사상적 기조로 삼고 조선후기 당쟁 중심에서 국왕마저 '택군'을 할 정도로 세력과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노론벽파는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많은 정적과 개혁가가 흘린 피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이 흘린 눈물을 먹으면서 100 년 정파로서 굳건히 체제를 유지한다.


강력한 정적인 이산 정조대왕이 펼치는 개혁정치로 입지가 약화되는 듯하였으나 결국 정조대왕도 개혁 꿈이 피어보기도 전에 의문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정조대왕이 승하하고서 노론벽파 횡포는 극에 달하게 되어 세도정치로 이어지는 학정으로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조선은 몰락하는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후부터 강화도 조약이 있기까지, 이 수구집단들은 기득권 유지에만 집착하며, 조선은 국가 생존을 위한 개방과 변화를 추구하지 못한 채 우리 민족은 일제 식민지라는 치욕스런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놀라운 '수구세력' 생존능력을 알 수 있다.
성리학 유일사상과 소중화 사상으로 다른 모든 사상과 서양학문을 배격하던 노론 잔당들은 반제국주의 반식민지 민족독립운동과 항일의병운동에 전혀 참가하지 않은 채 하루 아침에 일왕과 일본제국을 따르는 충실한 신하로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유명한 매국노 이완용 내각도 모두 이 노론명문가 자제들이다.


이후 36년간 일제 식민지 기간 동안 '반민족매국노'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어떻게 일제에 충성하고 독립운동을 탄압했는가는 여러분들도 잘 알 것이다.

광복이후에도 이 '반민족매국노' 생존능력은 다시 볼 수 있다.

'일본제국과 천왕폐하를 위해서 미국과 성전' 을 외치더니 이제는 미국을 따르는 충실한 신하로 그 모습을 바꾸며 과거 독립운동가를 '박멸'하던 그 훌륭한 솜씨를 인정받아 '남한 빨갱이 소탕' 이라는 중요임무를 맡으며 미군정에서 다시 '기득권'을 유지한다.
이후 행적은 오늘 날 보는 바와 같다.

어떻습니까? 시민혁명으로 최초 민주공화정을 이룩한 프랑스가 2차대전 종결이후 나치부역자들을 수만명이나 처단을 하고 오늘날까지 그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 것입니다.

그 때 프랑스 우파 드골장군은 한번 민족과 국가를 배신하고 팔아먹은 '반민족매국노' 씨를 뿌리 째 뽑아버리지 않으면 그 씨가 세력을 키워 기득권을 찾기 위해서 또다시 똑같은 짓을 반복할 것을 알았기에 이러한 민족반역자들을 처단하는 일에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대숙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반민족매국노'들을 척살하지 못한 대가를 치루고 있다는 것을 보면 드골 우파정부와 프랑스 국민이 얼마나 현명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노론벽파에서 한나라당까지 대한민국 수구기득권세력 역사를 간단히 말씀드렸습니다. 이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반도에 뿌려진 민중 피와 눈물이도대체 얼마나 될까요? 말 그대로 '통한스런 대운하' 를 이룰정도 일겁니다.

우리 선조 잘못으로 오늘날 우리가 이렇듯 수모를 겪고 있듯이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가 이 반복된 굴욕스런 역사 고리를 끊지 못하면 100년뒤 우리 후손들이 또다시 통한스런 눈물을 흘리게 될 겁니다.

여러분, 저에게 꿈이 있다면 그것은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차를 끌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서 명성을 누리면서 예쁜 아가씨와 결혼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우리 후손에게 당당하고 자랑스런 조국 '대한민국' 을 물려주고 싶은 바람 밖에 없습니다.(뭐...제가 아직 어리고 홀몸이라서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인 지도 모르죠..)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민중들은 지역이나 생각 이념 연령과 성별 차이를 뛰어 넘어서, 절대로 분열하고 다투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수구세력에 맞서 끈질기게 살아온 다 같은 역사 속 민중입니다.



마지막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1875- 1953년) 말을 남기며 마무리 합니다.
조선 총독부 마지막 업무에서 남긴 말...

"우리는 패했지만 한국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한국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이 누리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한국민에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 같은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으며 번영했지만 현재 한국은 결국은 식민교육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by 누운돌 | 2010/03/01 11:35 | 트랙백 | 덧글(0)

"MB,독도포기" 요미우리 보도 2차 소송

다음 아고라
노무현 대통령이 한 독도는 우리땅 연설이 정말 가슴에 와닿는 날입니다,


이미 1년전 이 대통령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는 것을 동의해 독도를 포기했다는 요미우리 보도를 청와대에 '사실이 아니면 법으로 조치를 하라'고 한 사람이 있었네요.

그 때 민주당 대변인인 최재성의원이 청와대에 요구한 사안으로 사실이면 명백한 탄핵감이라는 말과 함께 요미우리 보도는 사실일 수가 높아 보입니다. 사실이 아니면 소송 고소 좋아라는 청와대가 왜 지금까지 가만 있을까요? 국민이 나서야 합니다.

제 2차 '독도는 우리땅' 소송에 전국민 참여가 필요합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진짜 보수와 개혁 진보세력까지 국토를 보존하고 국가를 지키는 일에 보수와 진보가 어디 있습니까?
오로지 매국노와 대한민국 국민이 있을뿐 독도포기 진상을 규명하고, 그 책임을 묻는 방법을 댓글로 토론해 보았으면 합니다.

2009. 8. 16.
독도는 우리땅 국민소송인단 1866인 대리인 변호사 이재명

요미우리 독도보도, 청와대 고의로 1년이 넘도록 손 놓아

by 누운돌 | 2009/08/16 21:52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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